CAPÍTULO 18
제18화
다음 날, 로제리아는 아침이 되자 마자 아인의 방을 찾았다. 평소 아 침 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할 때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아인은?”
"아직 주무십니다.”
로제리아는 일부러 아인이 잠들어 있을 시간에 찾아왔다. 아인이 눈을 떴을 때 옆을 지켜 주고 싶어서..
"일어날 때까지 안에서 기다릴게.”
레니샤의 속삭이는 목소리에 로제 리아도 작게 답하며 안으로 들어갔 다.
로제리아는 침대 맡에 자리를 잡고 아인을 바라봤다. 아이는 자고 있을 때가 천사라더니... 아인은 천사처럼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물론 깨어 있을 때도 엄청나게 귀 엽고 사랑스럽지만.’
지금의 모습은 또 다른 의미로 사 랑스러웠다. 지루할 틈 없이 아인을 바라보고 있는데 카시우스 공작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무시하려고 해 도 어제부터 계속 마음에 걸려 있었 다.
'내가 아인을 모른다니.”
로제리아는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아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은 정작 카시우스 공작이었다.
아인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지 못 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로제 리아가 카시우스의 말을 떠올리며 한껏 부정하고 있을 때였다. 깜박... 아인의 눈꺼풀이 흔들렸다.
"...일어났어요?”
"어머니...? 여긴 어떻게....”
아인은 잠기운이 가득한 채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앞에 보이 는 존재가 로제리아가 맞는지 확인 하기 위해서.
“좋은 아침이에요.”
그런 그를 향해 로제리아가 상냥하 게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인의 기분이 상쾌하기를 바라면서. 그 마음을 아는지 아인 역시 로제리아를 향해 환하게 웃으 며 일어났다.
로제리아는 아인이 준비를 하는 동 안 소파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아인은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어느새 로제리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잠은, 잘 잤어요?”
"네. 한 번도 안 깨고 잤어요.”
아인이 씩씩하게 말했다. 아인의 이런 모습을 그녀는 지켜 주고 싶었 다. 어느새 로제리아의 얼굴이 다정 하지만 진지해졌다.
“아인. 공작님과는 내가 얘기를 잘 했어요.”
사실 로제리아는 아인의 몸이 괜찮 은지도 확인할 겸 카시우스 공작과 합의를 본 것에 대해 얘기를 해 주 고 싶어 일찍부터 온 것이었다.
"아인, 앞으로는 걱정하지 말아요.”
“........?”
“아무리 교육이라고 해도 몸에 무 리가 되는 훈련을 하도록 강요하지 는 않을 거예요.”
“…..”
“그러니 아인도 더 이상 그런 무리 한 훈련은 받지 않아도 돼요.”
“감사해요. 어머니.”
아인이 살포시 웃어 보이자 로제리 아 역시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가 아인이 고통스러운 어린 시 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역시, 아인도 힘들었던 거야. 다행 이야. 지금이라도 멈춰 줄 수 있어 서.’
로제리아는 마음 한편에 쌓여 있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에 상쾌 했다. 오늘따라 하늘도 맑고 공기도 좋고 당연히 기분이 끝내주었다.
“아참, 그리고 말이에요.”
“……?”
로제리아가 동그랗게 뜬 눈을 반짝 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외출할까요.”
로제리아는 아인과 함께 의상실에 가려던 계획을 떠올렸다. 원래 연무 장으로 갔던 것도 이 말을 하려던 거였는데, 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깜 박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아인을 바라봤다.
"외출이요...?”
“곧 모임도 있고 하니까... 이번에 새로 옷을 맞추면 어떨까 해서요."
사실, 모임은 핑계였다. 그냥 아인 과 함께 외출해서 저택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 다. 아인이 큰 눈망울을 몇 번인가 깜박였다.
“좋아요.”
아인이 활짝 웃었다. 역시 아인은 사랑스럽다. 카시우스 공작의 말은 귀담아 들을 게 못 됐다.
“그럼 내일 바로 갈까요?”
"네. 좋아요!”
“외출한 김에 맛있는 것도 먹을까 요?”
“그것도 좋아요!”
아인은 로제리아의 제안을 단 하나 도 거절하지 않았다.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와 씩씩한 목소 리로 좋다고 대답했다. 덩달아 로제 리아도 신이 나서 하고 싶은 것이 늘어났다.
“혹시 아인은 하고 싶은 거 없어 요?”
“저는 어머니랑 하는 건 다 좋아 요”
“어머... 우리 내일 이것저것 많이 해 봐요.”
로제리아와 아인은 그 후에도 한참 을 어떤 옷을 사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없는지에 대한 대화를 끊임없이 이 었다. 내일 아인과 외출하는 일에 기대감이 점점 더 높아져 갔다.
****
레니샤가 아인의 세숫물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보통 이런 자질구 레한 일들은 하녀들이 하는 법이었 지만 그녀는 아인의 생활 곳곳에 필 요한 일들을 직접 하는 걸 좋아해서 아직도 그녀가 담당하고는 했다.
그런데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뭔가를 보고 당황해서 멈춰 섰다.
“아인 님... 그건...?"
레니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 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아인의 손에 들려 있는 병을 향했다. 그건 그가 더 이상 먹지 않기로 한 독이었다.
아인의 무감한 눈동자가 레니샤를 바라봤다. 그는 당황하지도 놀라지 도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에겐 비밀로 해.”
“……”
그가 덤덤하지만 단호하게 명령했 다. 레니샤는 바로 대답을 해야 한 다는 사실도 잊은 채 넋을 잃었다.
레니샤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 녀가 지시받은 것과는 상반된 상황 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굳이 걱정하시게 할 필요는 없잖 아.”
“.....Si. 알겠습니다.”
레니샤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본능이 시키는 대로 답했다. 사실, 아인은 그 무엇도 멈춘 적 없었다.
여전히 독을 먹고 있었고 지난번에 문제가 됐던 독은 이미 완벽하게 적 응해 몸에 내성이 쌓였다.
'그럼 지금까지 독을 섭취하지 않 은 척... 위장한 거였나.’
혼란스러움이 잦아들기 시작한 레 니샤가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땐 다시는 안 먹을 것처럼 굴더 니.”
카시우스 공작이 그런 아인을 향해 한마디 했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 불만이 덕지덕지 묻어 나왔다.
"고, 공작님...?!”
레니샤는 1인용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는 카시우스 공작을 발견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바로 직전에, 아인이 그녀에게 눈 짓으로 신호를 보내 주었기 때문에 다행히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꾹 참 고 조용히 물러났다.
카시우스 공작은 아인이 독이 든 병을 손에 집었을 때부터 그곳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맛은 괜찮나.”
"이걸 맛으로도 먹나 보군요.”
누가 들어도 도발이었지만, 아인은 그저 개소리로 치부하고 무시했다. 대신, 독이 담긴 병의 마개를 땄다.
“몰래 먹는 건가.”
카시우스가 비꼬듯이 말했다. 하지 만 아인은 태연하게 입꼬리를 올리 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습니까.”
카시우스 공작의 물음에 아인이 당 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속이는 거다?"
“그보다... 배려하는 거지요.”
카시우스 공작이 그의 행동을 비꼬 았지만 아인은 오히려 여유롭게 미 소를 살짝 띠며 말했다.
“어머니가 걱정하는 건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겠습니까.”
“…..”
“아버지 말씀대로 이건 생존 수단 이지 않습니까.”
아인이 그대로 병에 담긴 독을 들 이켰다. 목울대를 지나 모두 삼키고 나니 목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퍼지 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의 독을 섭취했 지만 그 성분에 따라서 반응이 모두 달랐다. 먹자마자 반응이 나타나기 도 하고 하루가 지나도록 전혀 티가 나지 않다가 갑자기 위독해지기도 했다.
이번에 그가 마신 건 먹자마자 곧 바로 몸에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었 다.
하지만 아인은 몸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요동치고 있는 것을 느끼면 서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오 히려 여유로운 듯한 모습을 유지했 다.
“저는 독을 먹어야 하지만 어머니 는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으니 어쩔 수 없죠.”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의 목숨을 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예측 가능한 암살 방법은 모 두 차단시키는 것이 체이드 가문의 숙명이었다.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결국, 아무리 괴롭고 끔찍해도 독을 먹고 내성을 쌓아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철저하게 간 인해지는 이유도 고작 복숭아를 먹 지 못한다는 것까지 숨겨야 하는 것 역시 모두 근본적인 원인은 '생존'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인은 독을 계속해서 섭취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굳이 로제리아에게 얘기할 필요는 없었 다. 그가 계속 독을 먹는다는 사실 은 로제리아만 모르면 되니까.
“이 모습을 알면 경악하겠군.”
카시우스 공작의 혼잣말에 아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경계하고 있 는 것이다. 그가 로제리아에게 모든 것을 말해 버릴까 봐.
피식, 그제야 카시우스 공작에게 여유가 생겼다. 이걸 가장 걱정하는 구나. 아인의 약점을 잡은 것 같았 다.
“말해도 믿지 않을 겁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아인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카시우스 공작의 눈이 가늘 어졌다.
“꽤나 대단한 자신감이군.”
카시우스 공작은 아인의 미세한 표 정 변화까지 모두 알아낼 것처럼 삶 샅이 살폈다. 하지만 아인은 당황하 기는커녕 오히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야....”
아인은 일부러 말을 늘리며 카시우 스 공작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러면 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안 믿으시니까 요.”
“?!”
“그런데 저는 굉장히 좋아하시죠.”
아인에게서 여유와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로제리아가 두 사람 중 누 구를 믿겠냐고 묻는 듯한 시선이었 다.
카시우스 공작의 얼굴에서는 조금 씩 여유가 사라졌다.
아인의 오만해 보이는 자신감이 맞 았으니까. 바로 얼마 전, 그는 로제 리아에게 아인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무정한 그를 탓했다.
아인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카시 우스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괜히 기분이 상한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려고 할 때 였다.
“참. 내일 어머니랑 외출할 겁니 다.”
“외출...?”
아인이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툭, 말을 던졌다. 갑자기 두 사람의 외 출이라니, 무슨 일이지. 카시우스 공 작의 고개가 저절로 아인을 향했다.
“어딜 가는데.”
카시우스 공작은 궁금함을 참지 못 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인의 입술이 의미심장하게 늘어났다. 카시우스 공작의 눈에 그 미소가 마치 자신의 반응을 즐기는 것처럼 사악하게 느 껴졌다.
“함께 의상실에 가자고 해서요.”
“……쇼핑이라도 하려는 건가.”
“곧 다가오는 모임에 입을 옷을 사 러 가기로 했습니다.”
카시우스 공작의 눈매가 가늘어졌 다. 그의 말에 떠오르는 생각이 복잡 한 듯 눈을 찌푸렸다가 눈썹 끝이 올라갔다가 미간이 좁아졌다.
“외출하는 김에 다른 곳들도 구경 하고 음식도 사 먹기로 했는데...."
“……”
“역시…... 어머니께서 아버지한테는 얘길 안 하셨나 봅니다.”
아인이 자랑을 하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 던 카시우스의 얼굴이 복잡했다.
그의 입술이 닫혀 있는 것을 가만히 구경하던 아인이 재미있다는 듯 입꼬 리를 늘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 둘이 잘 다녀오죠.”
마지막 아인의 한마디에 결국, 카 시우스 공작의 얼굴 근육이 사정없 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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