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ÍTULO 17
제17화
로제리아가 돌아가자 보좌관이 얼 굴을 굳히며 다가왔다.
“정말 그렇게 하실 겁니까.”
“그렇게 하길 원한다는데 어쩌겠
보좌관의 걱정스런 물음에 카시우 스가 무심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인 님의 훈련은 아직 반밖에 이르지 못한 수준입니다. 여 기서 훈련을 멈춘다면....”
“그걸 너도 아는데, 아인이 모르지 는 않겠지.”
“......”
“그런데도 안 먹겠다고 하는 걸 보 면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는 거겠 지”
카시우스의 대답은 언뜻 보기에 아 인의 결정을 믿어 주는 것 같았지 만, 실은 상한 감정을 빌미로 이렇 게 심술부리는 것이다.
'하아....’
보좌관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간 신히 참아 냈다. 요즘 공작님께서 종종 유치해지곤 한다는 생각은 과 민한 반응인 걸까.
보좌관의 걱정과는 달리 카시우스 는 집무실을 유유히 벗어나 긴 복도 를 걸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방 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벽면을 가득 채운 선반이 있었고, 그 위에 알 수 없는 기호가 적힌 병들이 빼곡했다. 병 안에 담 긴 것은 모두 다른 종류의 독이었 다.
체이드 가문은 제국에 존재하는 모 든 독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로지 독을 보관하고 관리하기 위한 공간 과 인력도 갖추고 있었다.
세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독이 있다면 그 해결책을 알고 있는 곳은 체이드 공작가일 것이다. 이건 체이 드 공작가의 강력한 무기이면서 방 패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공간이 바로 그 독을 모아 놓은 곳이었다. 이곳에는 해독 제 역시 같이 보관되고 있었다.
단, 그 순서가 뒤죽박죽이고 규칙 이 없어서 독에 대해 완벽하게 숙지 하고 있는 자들만이 독과 해독제를 구분할 수 있었다.
카시우스가 병을 집어서 위치를 바 꾸기 시작했다. 그는 가끔씩 이곳에 와서 무작위로 위치를 옮기고는 했 다. 그렇게 하면 혹시 모를 사태에 도 보안이 더욱 철저해졌다.
카시우스가 또 다른 병을 집어 들 었을 때였다. 보좌관이 인기척을 내 며 들어왔다.
“공작님. 오늘 모인다고 합니다.”
“그래?”
보좌관의 보고에 카시우스가 비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보좌관이 말한 오늘 모인다는 그들 은 귀족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체이 드 공작가에 대한 악감정으로 가득 한 귀족들.
그들이 야심한 시각에 은밀하게 모 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꽤 지 난 일이었다. 그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라고는 어떻게 해야 체이드 가 문을 누를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 고, 모두 카시우스에게 보고되었다.
“거기서 나오는 얘기는 하나도 빠 짐없이 듣고 보고하도록 해."
“네. 명심하겠습니다.”
카시우스의 얼굴에는 어느새 기대 감이 차올랐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일로 즐겁게 만들어 주려나.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
밤하늘이 어둑하고 야심한 시간.
좀도둑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이 들이 있었다. 그들의 차림새는 도둑 이라고 하기에는 화려했다. 야심한 시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으슥 한 곳에 모인 그들은 귀족들이었다.
“따라오는 자는 없었겠지요.”
“한두 번 움직이는 건가요. 확실하 게 없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다들 자리하시지 요.”
귀족들의 면면은 대단했다. 윈스테 르 후작을 비롯한 가주들은 그동안 제국을 지탱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 는 명망 있고 유서 깊은 가문의 주 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대대로 많은 영지를 가지고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지금에 이르러 약해지고 작아졌다고 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토록 대단한 이들이 은밀하게 모 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체이드 공 작가의 존재.
귀족들은 언제 체이드 공작가에 잡 아먹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기 전에, 아인 이라는 후계자가 더 끔찍한 괴물로 성장하기 전에 없애야 한다. 이건 귀족들 공공의 생각이었다.
귀족들끼리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요즘엔 잠자리가 뒤숭숭해서 제대 로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있습니 다.”
“체이드 그 작자의 행태가 도를 지 나칩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를 알 수가 없으니 하루하루가 살얼음 판이에요.”
“이대로 체이드 공작가와는 절대 공생할 수가 없어요.”
귀족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그들이 체이드 가에 느끼는 적의는 단호했 다. 눈앞에서 치워 버려야 할 존재 였다.
“그 마음은 저도 깊이 알고 있습니 다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이리 손을 놓고 있을 겁 니까!”
“허허. 제가 언제 손을 놓자고 했 습니까.”
“그럼 대책을 얘기해야지요! 대책 을!”
성난 귀족의 노성에 긴장감이 팽배 해졌을 때였다. 노르웨인 공작이 그 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 다.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으면... 미 래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래라니요.”
노르웨인 공작의 말에 모두가 의아 해했다. 그중 성질이 급한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 뜻이 뭐냐고 채 근하려고 할 때였다.
“지금의 황제는 체이드와 잡은 손 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노르웨인 공작이 모두를 향해 알리 듯이 말했다.
“성군의 얼굴을 하고 있는 능구렁 이입니다.”
그 말에 귀족들은 모두 침묵으로서 동의했다. 노르웨인 공작이 말을 이 었다.
“그동안 우리가 가진 것들을 빼앗 아 오지 않았습니까.”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황제는 백 성들에게는 성군일지 모르나 귀족들 에게는 약탈자였다. 그들이 오랜 시 간 누리고 있던 권력과 막대한 부를 빼앗아 간 자.
황제는 결코 귀족의 편이 아니었 다. 오히려 귀족들을 억누르려는 적 이었다.
“그럼 대체 미래가 어디 있다는 겁 니까.”
귀족 중 한 명이 답답함을 호소했 다. 황제와 체이드, 한 명도 감당하 기 힘든데 두 사람이 손을 잡기까지 했으니 귀족들에게는 이길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르웨인 공작은 오히려 그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는 을 빛냈다.
“황태자가 있지 않습니까."
“...황태자 말입니까?”
모두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그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다.
“황태자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겁 니다. 어차피 황제가 죽고 나면 다 음 황제가 되는 것은 황태자가 아니 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황태자와 체이드 가의 후계자의 사이가 별로라는 얘 기를 듣긴 했습니다.”
“황실과 체이드 가문 사이가 틀어 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거기에 황실 역시 우리 쪽으로 돌 아서게 하면 체이드 가문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독 안에 든 쥐밖 에 더 되겠습니까.”
“...그렇군요.”
귀족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던 중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윈스 테르 후작이 말을 꺼냈다.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황태자와 리즈윈 후작가의 영애가 가까운 사 이이지 않습니까.”
“......?”
“황태자는 아직 어리니 친밀한 사 이를 통해서 호감이 생기도록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윈스테르 후작의 말에 모두가 생각 에 잠겼다. 유치한 방법이지만 썩 나쁘지는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노르웨인 공작이 중얼거리며 한쪽 눈을 찌푸렸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할 겁니다.”
노르웨인 공작의 말에 귀족들의 얼 굴이 차츰 굳어 갔다. 그도 그럴 것 이 이 자리에 리즈윈 후작은 없었 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귀족들은 황제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대표적 으로 헤스티온 공작가가 있었다.
하지만 리즈윈 후작은 아니었다. 그는 황제가 체이드 가문의 손을 잡 고 그 세를 키우는 것에 반발심이 컸다. 그런데도 그는 이 자리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그자의 꼬장꼬장한 성격에 협조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지 않습니 까.”
그 말대로였다. 리즈윈 후작가는 명분에 맞지 않는 일에는 절대로 나 서지 않았다. 그 역시 제이드 가문 에 대해서는 안 좋게 생각하면서도 비밀스럽게 만나는 일은 할 수 없다. 며 지금까지 계속 불참해 오고 있었 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을 것 같 습니다.”
그 말 한마디로 윈스테르 후작이 제안한 방법은 기각됐다. 후작은 불 만스런 표정을 지었으나 그대로 침 묵했다.
“황태자가 아직은 어리긴 하나 사 리 분별이 확실하고 영민한 자입니 다. 체이드 가문이 제국에 미치는 악영향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그 옆에서 부채질만 조금 해 도 될 것입니다.”
귀족들은 황태자를 자신들의 편으 로 포섭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천 천히 시간을 기울여 황태자에게 귀 족들은 그의 편이라는 것을 알려 줄 것이다.
그리고 황태자가 성장해서 힘을 가 졌을 때 체이드 가문을 상대할 것이 다.
여기까지 합의가 됐을 때였다. 귀 족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 었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저희는 이렇게 숨죽이고만 있어야 하는 겁 니까.”
지금 맞고 있는 굴욕감도 더는 견 디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황태자가 성장할 때까지 참으라고 한다면 분 명 상당수가 도중에 터지고 말 것이 다.
“그래도 저희가 건재하다는 경고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귀족들이 동조했다. 이대로 기나긴 시간을 참는 것은 인내심이 버텨 주 지 못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노르웨인 공작의 물음에 답하는 사 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대로 참기에 는 억울하지만 마땅한 방법은 없다. 이것 역시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었 다.
“암살은 오히려 우리의 피해만 커 질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약점이 없 어서 쥐고 협박할 수 있는 것도 없 습니다. 그런데 뭘 할 수 있겠습니 까.”
“저어... 역시 독은 안......”
“독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매섭게 잘라졌다. 체이드 가문보다 독에 정 통한 가문이 없었다.
오히려 귀족들이 독살을 당할까 봐 최근 식사를 할 때마다 모두 확인하 는 수고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굴욕적이게도 그게 현실이었다. 인 정하고 싶지 않아도 괜한 자존심 때 문에 오기를 부린 끝에 기다리고 있 는 것은 처참한 패배뿐이라는 것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어떻게 찔러볼 구멍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귀족들은 답답함을 금치 못 했다. 이대로 체이드 공작가에 굴복 해야 하는 건가. 상상만으로도 끔찍 했다.
“무슨 수가 없겠습니까.”
“글쎄요.”
시원한 대답이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귀족 연합은 그 규모가 작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체이드 공작가 앞에 서만큼은 무력했다.
“함부로 행동했다가 피해를 더 키 울 수 있습니다.”
제국에는 체이드 공작에 의해 목숨 은 물론이고 가문까지 멸문당한 곳 이 이미 여럿이었다. 그 사실을 알 고 있는 귀족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우선 황태자에 관한 것부터 준비 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엇인 지 차근차근 찾아보는 게 좋을 듯싶 습니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잘못 움직였다가는 목숨이 위 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귀족들 이 거기서 합의를 했다.
어느새 새벽 동이 트기 시작하고 있었고 그제야 귀족들은 개운한 얼 굴로 모두 돌아갔다.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오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모든 대화를 엿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모든 말들이 체이드 가 문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더라 면 절대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 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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