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ÍTULO 16
제16화
카시우스 공작은 집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연무장에서 있었 던 일이 떠올라서 엉망진창이었다.
서류 중 멀쩡한 것이 거의 없었다. 종이가 구겨지면 다행이고 산산조각 으로 찢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연 무장에서 있었던 일은 아무리 생각 해도 억울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아인을 학대하 는 것처럼 반응했다. 지금도 로제리 아와 아인이 뒤돌아서던 모습이 자 꾸만 아른거렸다.
“공작님. 마님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셔라.”
카시우스 공작은 드디어 왔군, 이 라고 생각하며 로제리아를 맞이했 다. 그 역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 다.
문 사이로 들어오는 그녀의 얼굴에 결연함이 감돌았다. 한눈에 봐도 아 인에 대한 일로 따지려고 온 것이 분명했다. 눈빛만 봐도 그를 향한 적대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 다.
“무슨 일이지.”
카시우스 공작이 안경을 벗고 등을 뒤로 기댔다. 그를 찾아온 로제리아 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얼굴에 흔들림이 없었다.
"아인의 문제로 할 말이 있어요.”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그 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그 는 그녀가 말을 이어 가는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봤다.
“저는 절대 독을 용인할 수 없어 요.”
“…..”
“앞으로 아인에게 독은 물론이고 몸에 무리가 가는 건 그 무엇도 강 요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녀의 말에는 구구절절 아인에 대 한 걱정이 묻어 나왔다. 아무리 아 인이라고 해도 열 살이라는 것만큼 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였다. 그런데 도리어 독을 먹이 고 그런 강압적인 훈련을 시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나만 보면 벌벌 떨 더니, 이제는 눈 똑바로 쳐다보고 말도 잘하는군.”
카시우스는 그녀가 하는 말보다 자 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의 행동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뼈가 있는 말에 로제리아는 더더욱 긴장했다.
로제리아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 려 노력하고 있는 것일 뿐 방에 들 어선 순간부터 극도로 긴장하고 있 었다.
'여기서 밀리면 안 돼.’
그러면 아인을 지킬 수 없다. 로제 리아는 오로지 그 일념 하나로 힘겹 게 입을 뗐다.
“...체이드 가문의 일원으로서 의연 해져야죠.”
카시우스 공작이 그녀에게 했던 말 을 이번에는 로제리아가 그에게 그 대로 돌려주었다. 카시우스가 헛웃 음을 터트렸다. 가느스름해진 그의 눈매가 날카롭게 그녀를 향했다.
“정말로 그렇게 믿는 건가. 아직은 평범하고 순진한 아이라고.”
“......?”
"아니면 믿는 척하는 건가.”
카시우스 공작의 말이 의미심장했 다. 그의 말에 로제리아는 바로 ‘네.' 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아인이 장차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으니까. 로제리아가 당황하고 있 는데 카시우스의 말이 이어졌다.
“과연 아인이 부인이 생각하는 것 기 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일까.”
카시우스 공작은 더 이상 모른 척 지켜볼 수 없었다. 그는 아인에게 완전히 속고 있는 로제리아에게 진 실을 알려 주기로 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아인은 부인이 생각하는 그런 순 진한 아이가 아냐.”
그러니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인은 결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고 그러니 다른 아이 들을 비교 상대로 둬서는 안 됐다.
“그 애의 감쪽같은 연기에 속고 있 는 중이라고.”
양의 탈을 쓴 아인한테, 로제리아 는 속아도 단단히 속았다. 그의 본 모습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앞에서 가짜로 지어낸 미소 만 봤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한 다.
'이렇게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로제리아가 꽤 충격을 받 은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 가고 있었고 눈꺼풀이 힘겹게 깜박거렸 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러니 더 이상 아인에 대해서 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려 할 때였다. 멍하니 굳어 있던 로제 리아가 갑자기 눈을 치켜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무서운 기세로 쏘아보 는 눈빛에 순간적으로 그가 당황할 정도였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로제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왠지 화가 났다. 아인은 그의 아들이었다. 그가 아껴 주고 사랑으로 보듬어 줘 야 할 존재.
그렇게는 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식 으로 아들을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 이었다.
“아인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말 아 주세요.”
로제리아가 단호하게 부탁했다. 속 이 상했다. 그가 아인을 이런 식으 로 봐 왔기 때문에 소설 속 로제리 아가 아인을 학대할 때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인가 싶어서.
훗날에 그가 어떤 모습일지는 몰라 도 지금의 아인은 너무나 사랑스러 운 아이였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괜한 말로 아인에게 흠집을 내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아인은 배려심이 깊어서 제가 걱 정할까 봐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웃으며 괜찮다고 해 주는 아이예요. 그러면서 그 어린 몸으로 강압적인 훈련을 불평불만 없이 지금까지 해 올 만큼 인내심이 강하기까지 해 요.”
“….”
“그런 걸 대견하다고 해 주셔야죠.”
“….”
“착하다고, 잘했다고,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 해 주셔야죠.”
그녀의 강경한 태도에 카시우스는 살짝 당황했다. 대체 뭘 보고 이렇 게까지 믿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 았다.
“아인이 아플 때 한 번이라도 신경 써 주셨나요.”
“.….”
“아프지 말라고 다정한 말 한마디 라도 건네주시고 아인을 좀 더 애정 으로 바라봐 주세요.”
말을 이어 가다 보니 로제리아는 울컥, 감정이 치솟았다. 아플 때마다 혼자 끙끙거리며 참아야 했을 아인 의 모습이 떠올라서 카시우스 공작 에게 화가 났다.
소설 속에서 그의 역할은 방치였 다. 하지만 더 이상 로제리아가 아 인을 힘들게 하지 않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 른다는 후회가 들었다.
“독은 남이 도와줄 수 없어. 그건 그 스스로 버려야지.”
하지만 카시우스 공작은 여전히 단 호했다.
“나도 어릴 때 스스로 독을 먹었 어. 그렇게 먹은 게 백여 개가 넘 지. 그 결과 나는 어떤 독에도 당하 지 않는 몸이 됐고.”
그렇게 그는 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악당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걸 먹다가 죽을 뻔한 적은 없 나요.”
"있지.”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독을 먹고 열이 펄펄 끓어서 의식을 차리 지 못하기도, 환각이 보여 미친놈이 되기도, 그러다 이성을 잃기도 했었 다.
“그걸 먹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살아남기 위한 훈련이라고요...?”
로제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아이에게 독을 스스로 먹게 하는 건... 아이를 사지로 몰아넣는 거예요....”
로제리아는 점점 더 말은 빨라지고 목소리는 올라갔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만큼 흥분했다.
“그 정도도 버티지 못하는 놈이라 면 언젠가 다른 놈 손에 죽게 될 거야. 체이드 가문의 후계자라면 그 정도는 버텨 내야지.”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훈련이었지 만 그 과정을 넘어서지 못하면 어차 피 그것밖에 안 되는 목숨인 것이 다.
차라리 나중에 험한 꼴을 보지 않 고 죽어서 다행이라고... 체이드 가 문은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며 자라 왔다.
로제리아는 그의 말을 들을수록 머 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결 국에 원점이었다.
카시우스 공작을 비롯한 이곳 사람 들은 아인에게 독을 먹이는 게 어째 서 잘못된 일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 이대로라면 그들은 가혹한 교 육을 계속 할 것이 분명했다.
로제리아의 불끈 쥔 두 주먹이 부 들거렸다. 대체 이 개소리를 언제까 지 들어야 하는 거지.
"후우....”
말을 멈춘 로제리아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데 벌써 흥분해서 폭주하면 안 돼.
'진정하자. 진짜 할 말은 이제부터 잖아.’
로제리아가 결심한 말을 꺼내기 위 해 카시우스 공작의 눈을 똑바로 쳐 다봤다.
“그래서.”
결의에 가득 찬 눈빛을 한 로제리 아가 운을 띄우자 카시우스 공작의 얼굴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과연 그 녀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는 듯 이.
“앞으로 아인의 교육에 저도 직접 신경을 쓰려고 해요.”
“…..”
“제가 엄마인데 그동안 너무 신경 을 못 쓴 거 같아요.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아인을 열심히 가르쳐야 겠어요. 허락해 주세요.”
머릿속에 열심히 정리를 하고 온 것처럼 또박또박 늘어놓는 말들을 들으며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체이드 가문의 교육 방식을 바꿀 수 없을 텐데,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카시우스 공작은 말없이 그녀를 응 시했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 녀의 시선은 그의 입술을 향했다. 느릿하지만 조금씩 그의 입술이 벌 어졌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해.”
카시우스 공작은 생각보다 쉽게 그 녀의 말을 허락했다.
“....정말요?”
로제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 었다. 이렇게 쉽게 허락받을 줄 몰 랐다는 듯이.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해 봐.”
카시우스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로제리아는 얼떨떨하면서도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카시우스의 허락은 그녀의 말을 인정해서도 그녀를 믿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심술에 가까웠다.
카시우스 공작은 알 수 있었다. 그 녀는 아인과 함께할수록 그가 결코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다는 걸 언 젠간 깨닫게 될 거라는 것을.
‘그때는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카시우스는 나른한 얼굴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도 어릴 때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것도 아인보다 더 심해서 잘못 먹으면 과호흡으로 발작을 일 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약점을 호시탐탐 노리 는 자들 때문에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복숭아를 아무렇지 않은 척 먹었다. 그러고 몇 날 며칠을 쓰러 진 채 의식을 잃기까지 했다.
체이드 가문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한 결국엔 스스로 깨닫게 된다. 스 스로를 혹사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강해져야 한다고.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깨달은 것들 을 하나씩 자식들에게 가르치기 시 작해서 완성된 것이 지금의 체이드 가문의 교육이었다.
‘독을 먹는 것도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거는 행위도 모두 결국엔 필요악이라는 사실을 말이 야.’
그걸 로제리아도 결국엔 깨달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건혀 알지 못한 채, 앞으로 아인을 위해 할 일들을 떠올리며 의욕에 가득 찼 다.
“갑자기 말을 바꾸시면 안 돼요.”
“얼마든지.”
카시우스는 가볍게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롭게 답했다.
그 모습에 왠지 불안한 로제리아는 몇 번이고 카시우스 공작에게 확인 을 받아 내고 나서야 후련한 얼굴을 하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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