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ITULO 10
제10화 6
어느새 잠에서 깬 로제리아가 아인 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한 채로 미소를 지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수업은요?”
로제리아는 잠든 적 없는 척 화사 하게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오늘은 기둥에 많이 기대고 잤는지 그녀의 볼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게다 가 한쪽 볼만 붉은 게 낮잠을 오래 잔 것 같았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며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럼 로제리 아는 민망해하며 다음부터는 긴장을 한 채 기다릴 것이다. 그 모습을 상 상해 보니 별로 재미있지 않을 거 같아서 참았다.
“방금 끝내고 휴식 시간이에요.”
"설마 나를 보려고 일부러 온 거예 요?"
그녀의 목소리에 기대감으로 들떴 다. 아인은 그녀의 이런 반응이 좋 았다.
"여기 있으실 것 같아서요.”
"어머... 나도 아인이 보고 싶었어 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인의 대답 에 로제리아의 눈이 커졌다. 살짝 벌어지는 입술을 손으로 가리며 조 금 올라간 목소리로 감격했다.
"저도요!”
“…”
분명 격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 각했는데 로제리아가 갑자기 침묵했 다. 아인이 의아해하며 그녀를 향해 더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헤헤.”
살짝 움직였다. 입을 벌리고 어색 하게 '헤헤.' 하고 웃자 굳어 있던 로제리아의 얼굴이 씰룩, 움직였다.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아무 것도 반응하지 못한다. 지금 로제리 아가 그랬다.
‘저도요!' 하고 외치는 모습에 한 번 그랬고, 헤헤.' 하는 웃음에서 그녀의 모든 감각 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정지되었던 사고가 서 서히 돌아오고 그녀는 곧 울 것 같 은 얼굴이 되었다.
"어떡하면 좋아…”
로제리아가 양손으로 얼굴을 파묻 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아인은 얼굴이 천 개는 되는 거 같아.'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이 아인에게도 보일 정도였다. 로제 리아는 오열에 가까운 감동을 받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순진한 눈망울로 쳐다보 는 아인의 입꼬리가 이번에는 기분 좋게 올라갔다.
그래, 이 모습이 자꾸 보고 싶었 다. 왠지 심장 언저리가 간지러워서 콧등에 풀을 살랑거려 재채기를 일 으키듯 입꼬리가 자꾸 옆으로 늘어 났다.
중독성이 있어서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 안 하던 행동들을 하기 시작 했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
카시우스 공작은 위대한 악당이라 는 명성을 끌어올릴 때까지 그동안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대단한 악행을 저질러 왔다. 그런 그를 향 해 누군가는 정도를 모르는 망나니 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위대한 악당이자 체이드 공 작가의 주인인 그는 매우 유능했고, 매일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였 다. 오늘 이만큼 처리하면 내일은 그만큼 더 추가로 늘어났다.
카시우스 공작이 밤을 새어 가며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나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들이 아니었는데 자꾸만 다 른 생각에 빠지는 바람에 지체된 것 이다.
후원에서 봤던 아인과 로제리아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카시우스가 지 하에 있는 증인을 만나기 위해 후원 을 가로질러 가고 있을 때였다.
아인과 로제리아가 다정한 모자 지 간을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그의 발걸음을 멈 추게 만들었다.
‘저기 뭐 하는 거지?'
그가 자세히 살펴볼 때였다. 아인 이 그를 발견했다. 카시우스는 먼 거리에서도 분명하게 보았다. 아인 이 매정하게 몸을 돌려서 로제리아 와 함께 반대편으로 향하는 것을.
그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명확한 의 사 전달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을 떠올린 카시우스의 눈매가 좁아졌 다.
겉으로 보기에는 로제리아가 아인 을 예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카시 우스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아인 은 그녀에게 매우 공을 들이고 있었 다. 아주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그녀 가 자신에게 빠져들도록 말이다.
'영악하기는.’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 저하게 울타리를 치는 모습이 그의 눈에는 로제리아가 아인에게 잡아먹 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로제리아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인을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있 었다. 그 모습이 떠오르자 카시우스 의 얼굴이 또다시 일그러졌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뭘 하고 있든 문득 문득 그 모습이 생각났고, 문 제는 그럴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오 른다는 것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화기애애한 가족이 었다고.’
최근 공작가 곳곳에서 로제리아와 아인이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 다. 굳이 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자 꾸만 시야에 걸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끊임없이 미소를 짓던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 로제리아가 아인의 머리를 쓰다듬으 려고 하자 아인이 살짝 머리를 앞으 로 내미는 모습이.
그런데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평소에도 딱 히 즐거운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 만 이렇게 별로인 것 역시 오랜만이 었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카시우스 공작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두 사람의 모습이 체이드 가문의 품위에 훼손되기 때문일 것 이다.
둘이서 유치한 소꿉장난이나 하다 나. 웬만해서는 크게 소리 내서 웃 는 것도 자제해야 했다.
'감히 우리한테 기어오르려는 생각 을 하지도 못하게 행동거지를 조심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언제나 강하고 무서운 존재로 보여 야 하는 것이 그들의 품위였다. 그 런데 아무데서나 웃고 다닌다니, 절 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그것 때문에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거야.'
카시우스 공작은 자신이 불쾌해하 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고 나 서야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무시하려던 생 각에 한참을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 리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서류 한 장을 넘기는데 평소보다 두 배, 세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려 이제야 겨우 끝낸 것이었다.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닌 그였지만 철야 작업을 하고나면 피곤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라도 한숨 주무십시오.”
그의 보좌관이 서류를 정리하며 말 했다. 그도 그럴 생각이었다. 오늘 하루도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 었다. 지금 잠깐 잠을 자지 않으면 이 상태로 하루를 더 버텨야 했다.
"어디 가시려고요?”
카시우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 나 침대가 아닌 문 쪽으로 향하자 보좌관이 놀라는 게 보였다.
그가 잠을 자지 않아서 몸이 힘들 것도 걱정되지만, 그보다는 컨디션 이 저조한 그를 누군가가 건드려 굳 이 보지 않아도 될 피를 볼까 봐 걱정되었다.
“아침 먹으러.”
카시우스 공작이 무심히 답하고는 문을 나섰다.
"네...? 아, 그럼 식사를 가져오라 고 할까요.”
"다른 곳에서 먹을 거야."
“어디서 드실 겁니까. 그리로 가져 가도록...”
보좌관의 말이 길어지자 카시우스 공작의 날카로운 시선이 향했다. 움 찔, 자신이 뭔가 실수라도 했나... 긴장할 때였다.
“필요 없어.”
카시우스 공작은 그대로 문을 나섰 다. 그의 눈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그가 아침을 먹기 위해 온 곳은 아 인의 방이었다.
지난번에 그가 로제리아를 골려 주 기 위해 앞으로도 아침을 계속 먹겠 다고 했지만 그 이후로 한 번도 찾 아온 적 없었다.
매일 아침을 챙길 만큼 그가 한가 롭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애초에 그 말은 그녀와 아인을 곤란하게 만 들기 위해 한 것일 뿐 진심은 아니 어서 그동안 잊고 있었다.
'내가 안 와서 좋아했겠군.'
아인과 로제리아가 그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를 무너뜨려 줄 생각에 그의 입가에 비뚜름한 미소 가 걸렸다.
'재미있겠네.’
그 생각만으로도 밤샘 피로가 사라 지는 기분이 들었다.
***
오늘의 아인은 어제보다 또 얼마나 더 귀여워졌을까. 로제리아는 아인 을 만날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도로 나갈 뻔했다. 마치 데자뷔같이
내가 지금 헛것을 본 건 아니겠지. 로제리아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공작님... 도 계셨네요."
"함께 먹자고 하고도 못 와서 말이 야. 생각나는 김에 들렀지."
“...그러시군요.”
생각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왜 굳이 기억을 해 내서 상쾌한 아 침에 흙탕물을 튀긴 거지.
지난 며칠 동안 그가 남긴 한마디 때문에 로제리아는 매일 아침 아인 의 방 앞에서 기대와 설렘이 아닌 불안과 두려움으로 서성였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문을 열었을 때, 로제리아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는 아인밖에 없었다. 그 순간 안 도와 함께 마음 놓고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카시우스 공작 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몇 번이고 이 과정을 반복했는지 모 른다.
그리고 드디어 아무 걱정 없이 문 을 활짝 열었는데.... 마치 그녀를 농락하는 것처럼 그가 당황한 채로 굳어 있는 로제리아를 보며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저건 분명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부러 자신을 안심하게 만들고 난 후, 짓밟는 것 같았다. 그래서 눈앞 에 있는 그의 존재가 더 무서웠다.
“뭐 해. 앉지 않고.”
카시우스 공작이 여전히 뻣뻣하게 굳은 채 서 있는 로제리아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 시이에 비어 있는 한 자 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인 의 옆자리인 건 좋지만 카시우스 공 작의 옆자리라는 건 끔찍했다.
어차피 선택지는 없었다. 울며 겨 자 먹기로 앉는 수밖에.
그래도 아인이 옆에 있으니까. 아인 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살짝 틀어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버텨 봐야지.
오늘은 송아지 고기를 넣은 채소 스프에 빵과 치즈, 두툼한 베이컨이 들어간 샌드위치가 준비되었다. 그 리고 카시우스가 있어서인지 아침에 는 절대 나오지 않던 사슴 고기구이 와 레몬을 뿌린 송어 요리가 추가되 었다.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다. 로제리아 와 아인, 카시우스 공작이 둘러앉아 함께하는 식사라... 음식이 코로 들 어가는지 눈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로제리아는 아직도 카시우스 공작 이 무서웠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든 당할 것 같은데 이 자리가 괜찮을 리 없었다.
결국, 도저히 음식이 넘어가지 않 아서 애꿎은 생수만 들이켰다. 잘못 먹었다가는 바로 체해서 오늘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공끙거릴 것 같았 다.
게다가 카시우스 공작은 식사하는 내내 로제리아를 집요하게 쳐다봤 다. 모른 척하려고 해도 도저히 안 될 만큼 강렬해서 혹시 눈이라도 마 주칠까 봐 고개조차 마음대로 돌릴 수 없었다.
그래도 위태로웠지만 아인이 있어 서 버틸 만했다. 이대로 아무 일 없 이 무사히 식사가 끝나기만을 바라 고 있는데.
쾅-!
나이프를 들고 있던 카시우스 공작 이 테이블 위를 세게 내려졌다.
접시가 흔들리고 유리잔이 테이블 아래로 떨어져 와장창창 - 요란한 소리가 났다. 결코 동요하지 않는 하녀들 역시 갑작스러운 소동에 짧 은 비명이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깜짝… 이야.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심장이 미친 속도로 뛰었다. 갑자기 왜... 그런 거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카시우스 공작의 눈치를 봤다. 그가 인상을 쓰며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괜찮으세요?"
엄정난 용기를 끌어모아 조심스럽 게 물었다.
'지난번에도 이랬던 거 같은데...'
그때도 이유도 없이 갑자기 화를 내며 뭔가 중얼거리더니 더 이상 아 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시우 스 공작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 은 채 험악하게 구겨진 얼굴로 굳어 있었다.
'설마... 광증은 아니겠지.”
소설 속에서 카시우스 공작에게 광 증이 있었다는 말은 없었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Comentarios
Publicar un comentario